
< 위대한 정치가┃The Greatest Politician >
이름 : 페리클레스 (Περικλῆς | Pericles)
고대그리스어 / 알파벳
생몰 : B.C. 495(?) ~ 429
국적 : 고대 그리스 아테네

· 아테네 제국 초대 지도자
· 델로스 동맹의 맹주
· 아테네 스트라테고스
<초기>
기원전 495년 아테네 북쪽의 콜라르고스 데모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귀족 혈통이었기 때문에 당대의 저명한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시기 아테네는 다수의 대중들이 근간을 이루는 민중파와
소수의 귀족들이 이끄는 귀족파가 서로 대립중이었다.
기원전 466년 경, 아테네 민중파의 수령 에피알테스를 따라 중요 인물로 발돋움한 페리클레스.
기원전 461년 민중파는 귀족파가 주를 이루는 강력한 정치 기관인
평의회 '아레이오스 파고스'의 권한을 약화시켰고,
이제 아테네의 정치적 의사 결정은 대중들을 설득해야하는 민회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개혁으로 인해 민주정의 시대가 열렸다.
귀족파의 수장인 키몬은 자신의 재산을 나눠주어 대중의 신망을 얻었다.
페리클레스는 이에 대중영합정책, 즉 포퓰리즘이라고 불리는 방법을 통해 대중들의 협력을 강조했다.

이후 페리클레스는 도편 추방을 통해 정적 키몬을 아테네에서 추방한다. 도편 추방제란,
아테네의 미래에 위협이 될 것 같은 인물을 깨진 도자기 파편에 적어 내고,
많은 투표를 받은 사람을 아테네에서 10년 간 추방하는 제도이다.
키몬은 스파르타에서 농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반란군을 지원했었는데,
이를 민중파에서 키몬이 아테네의 부를 이용해 스파르타인을 지원했다고 대중들을 선동한 것이다.
키몬이 추방되자 페리클레스는 시민들에게 빠르게 지지를 얻게 되고,
민중파의 수장이자 페리클레스의 절친이었던 에피알테스가 살해당하자
페리클레스가 민주정의 수장이 되어 실질적인 아테네의 지도자가 된다.
이후 기원전 443년부터 15년 간 아테네의 스트라테고스(장군)에 당선되며 국가 정권 장악
이를 페리클레스의 황금기라고 한다.
<중기>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약 20년간 아테네의 급성장에 대해 위협을 느낀 스파르타가
델로스 동맹에 맞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킨다. 아테네는 아이기나와 테베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보이오티아의 반란과 이집트 전선에서의 패퇴로 수세에 몰리게 된다.
그러던 중 기원전 451년 추방에서 복귀한 키몬의 제안을 받아들여 스파르타와의
'30년 휴전 협정'을 맺는다. 전쟁의 실패로 인해 페리클레스의 입지는 축소되고
페리클레스의 공격적 군사 전략은 완전히 소극적인 수비 형태로 변하게 된다.
기원전 444년, 보수파와 민주정파는 극심한 권력 투쟁을 벌이게 된다. 보수파의
새로운 지도자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가 추진하는 건설 계획이 방만한 예산 운영으로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고발하였다. 이에 페리클레스가 민회에서 자신의 재산으로 소비된
모든 건설 비용을 상환하겠다고 제안해 투퀴디데스는 패배를 당하였다. 기원전 442년 아테네의
시민들은 투귀디데스를 10년 간 도편 추방하였고, 페리클레스는 1인자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또한 페리클레스는 그리스에서의 아테네의 힘을 강화시키고자 하였다. 델로스 동맹이
아테네 제국으로 변질되는 것은 페리클레스 이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었으나, 페리클레스의
정책으로 인해 이 변화가 가속되게 되었다.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여러 도시국가들의
반란에서 패전한 뒤, 에게 해에서의 아테네의 해상 패권이 크게 위협받게 된다. 이에 델로스 섬에
있던 동맹의 금고를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없다는 이유로 기원전 453년 아테네로 옮기게 된다.
이것은 동맹에서 아테네의 영향력을 크게 강화시켜, 도시 국가 연합체였던 델로스 동맹이
아테네를 수도로 하는 그리스 제국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원전 447년 아테네의
클레아르코스는 모든 동맹국이 아테네의 은화와 형량 단위를 사용케 하는 화폐 칙령을 제안하였고
그로 인해 그리스의 해상 무역을 더욱 촉진시켰을 뿐 아니라 아테네의 경제 정책이 그리스
전역에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기원전 438~436년 사이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함대를
이끌어 그리스 도시들과 우호 관계를 맺었으며, 아테네의 요새화와 같은 내부 사업에도 힘써
안드로스, 낙소스, 투리이, 암피폴리스 등에 클레루키아(특별 시민지 통치 기구)를 설치하였다.
그의 정부인 아스파시아는 매우 똑똑한 여성이었으며,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을 다듬어주는 등
페리클레스를 지원하였다고 한다.
<후기>
기원전 433년, 아테네는 막강한 해군력을 이용해 스파르타 동맹국들의 해상을 봉쇄하는
메가라 법령을 발표했다. 스파르타 동맹국들의 경제를 옥죔으로써, 스파르타 동맹 도시 국가들을
아테네 쪽으로 끌어들이려 하였다. 스파르타는 메가라 법령 철회 및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알크마이오니다이 가문을 즉각 추방할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전쟁을 불사한다는
위협을 가했다. 페리클레스는 이 같은 양보를 하게 되면, 스파르타가 더욱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아테네 시민들로 하여금 전쟁의 명분을 가지도록 이해시켰다.
또한 페리클레스는 메가라 법령을 철회하는 대신, 스파르타가 자국 영토에서 주기적으로
외국인을 추방하는 관습인 크세넬라시아를 버리고, 자국 동맹 도시의 자치권을 인정하라는
역 제안을 하였다. 이 제안이 성사되면 스파르타에 상주하는 아테네인들이 상권 장악을
쉽게 할 수 있게 되어 스파르타의 이익이 줄게 된다. 동시에 스파르타로부터 자치권을 받게 된
도시국가들에게 경제 제재를 가해 아테네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었다.
당연히 스파르타는 이를 거부하였으며, 양 측 모두 물러나지 않아 전쟁이 발발한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을 아테네 성곽 안으로 피신시킨다. 스파르타가 과거
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요새 밖의 아테네인을 무차별적으로 짓밟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아테네의 시민들은 터전을 떠나는 데 동의하긴 하였으나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스파르타의 군대는 역시 아테네의 농장에 불을 지르고, 돌을 던지는 등 파괴를 일삼았다.
농민들은 이 광경을 보고 페리클레스에게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페리클레스에게
즉각 반격을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페리클레스는 대중들을 설득해 적극적인 교전보다는
스파르타군이 아테네 근방에 있는 동안 아테네 군함을 보내 스파르타를 약탈하고,
기병대를 배치해 도성과 가까운 농장을 지키도록 하는 선에서 끝냈다.
기원전 430년, 스파르타 군대는 2차 침공으로 아테네 근방을 대규모 약탈하였으나
페리클레스는 역시 소극적인 버티기 전략을 밀고 나갔다. 이에 아테네 도성에 대규모 시민들이
밀집되자 전염병이 창궐하게 된다. 역병의 실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장티푸스, 페스트, 천연두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전염병으로 인해 도시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며, 페리클레스는 어떻게든 대중들을 설득해 혼란을 잠식시키려고 하였으나 정적들에게
기소당해 장군직을 박탈당한다. 1년 후 민회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총사령관으로 복귀한다.
기원전 429년 모든 군사 작전을 총괄하다가 그 해 가을 역병으로 인하여 사망한다.

여담으로, 코로나로 인해 페리클레스의 조각상에 소독이 이루어지게 되자
혹자는 이를 보고 전염병으로 죽은 페리클레스가 2500년만에 방역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페리클레스의 석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투구인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대두를 감추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역사학자는 없고 대부분
저 투구는 장군이라는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의>
- 아테네/그리스 제국의 최고 전성기 통치
- 최초의 민주정치 실현 (직접민주정치)
- 그리스 지역의 화폐와 형량의 통일
- 고대 문명 간의 교류 확장
- 국책 사업을 통해 프로필라이아, 파르테논, 아테나황금상, 아테네신전 등의 랜드마크 건설
페리클레스, 또는 이 시대가 등장하는 작품/용어
- 게임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 (Assassin's Creed Odessey, 2018)
- 게임 '문명'의 '그리스' 지도자
- 영화 '300'
'지식·교양 > 역사·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 (0) | 2026.03.08 |
|---|---|
|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 (0) | 2026.03.08 |
| <정복자> 「다리우스」 (0) | 2026.03.08 |
|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1) | 2026.03.08 |
|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 (0) | 2026.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