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전쟁은 백년전쟁 후에, 약 30년 동안 잉글랜드의 왕권을 놓고 랭커스터가(家)와 요크가(家)가 싸운 왕위쟁탈전으로 전쟁의 이름은 랭커스터가가 붉은 장미, 요크가가 흰 장미를 각각 가문의 문장으로 삼은 것에서 유래하였다.
정신 이상이 된 헨리 6세를 요크가의 리처드가 섭정하게 되자 이를 위험시한 왕비가 리처드를 추방하였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랭커스터가의 헨리 4세가 플랜태저넷 왕가의 리처드 2세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것이므로, 요크공(公) 리처드가 랭커스터왕조 이상으로 왕위계승권이 있다면서 헨리 6세 때 궐기하였고,여기에 귀족간의 싸움이 결부되어 내란으로 번졌다. 이에 장미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1455년, 세인트올번스전투로 시작해, 1460년 리처드가 웨이크필드에서 전사하여 장남 에드워드가
그 뒤를 이었다. 1461년 에드워드는 자신이 즉위하여 에드워드 4세라 칭하고,
랭커스터파(派) 사람들을 반역죄로 몰아 영지를 몰수하고, 헨리 6세를 체포하여 투옥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랭커스터파를 타우턴전투에서 격파하고 헨리 6세를 국외로 추방하였다.
1470년 에드워드 4세 옹립에 큰 공을 세웠던 요크파의 워릭 백작이 반란을 일으켜
에드워드 4세를 국외로 추방하고 헨리 6세를 옹립하였다. 에드워드 4세는 추방되어 세력을 회복,
귀국하여 1471년 바넛전투에서 워릭 백작을 패사시켰다.
또한 헨리 6세를 붙잡아 살해함으로써 랭커스터왕조를 멸망시켰다.
에드워드 4세는 중앙집권화를 추진하여, 될 수 있는대로 의회를 소집하지 않고
중상주의적인 정책을 채용하여 절대왕정의 경향을 나타냈으나 1483년 사망하였다.
나이 어린 12세 된 장남이 에드워드 5세로서 즉위하였으나, 의회가 왕자를 서자라고 선언해
왕통이 확립되지 못하고, 에드워드 4세의 아우 글로스터공 리처드가 에드워드 5세를 투옥하고
리처드 3세라 칭한 후 동왕을 살해하였다.
이 무렵 대륙에 망명해 있던, 어머니 계통으로 왕실에 연결된 랭카스터 가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인
랭커스터계의 리치먼드백작 헨리 튜더는 프랑스의 루이 11세의 지원을 받아
1485년 웨일스에 상륙하여 보즈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패사시키고 헨리 7세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장미 전쟁은 끝나고 튜더 왕조가 열리게 되었다.

요약
전쟁의 발단 - 왕비의 섭정 리처드 추방 사건
- 헨리 6세(랭커스터가) VS 요크공 리처드(요크가)
1455 세인트올번스 전투
1460 웨이크필드 전투(요크공 리처드 전사)
1461 타우턴 전투(에드워드 4세 즉위, 헨리 6세 추방)
- 에드워드 4세(요크가) VS 워릭 백작(요크파)
1470 요크파 워릭 백작의 반란(에드워드 4세 추방, 헨리 6세 옹립)
1471 바넛 전투(워릭 백작 패사, 헨리 6세 처형)
1483 에드워드 4세 사망, 에드워드 5세 즉위
리처드 3세(글로스터공 리처드) 즉위
- 리처드 3세(요크가) VS 헨리 7세(랭커스터가)
1485 보즈워스 전투(리처드 3세 패사, 헨리 7세(헨리 튜더)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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